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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itique] 기대 감소 시대의 포스트 신생 공간

관리자

[The Critique] 기대 감소 시대의 포스트 신생 공간

요즘의 ‘힙’한 전시 공간은 대체로 좁고 작고 불완전하다. 젊고 힙한 느낌이 가득한 그곳에서는 작품을 굿즈로 만들어 파는,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상행위도 이루어진다. 대안 공간이라 불렸던 전시 공간들은 제도권에 대항하는 패기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의 ‘힙’한 전시 공간들은 무엇에서 도래한 것일까?

EDITOR 이경진

포스트 신생 공간이라는 이름의 각자도생

전시가 차고 넘친다. 한국 미술에 관한 아카이빙 활동에서 독보적인 역량을 갖춘 김달진미술연구소는 매년 개관하는 전시 공간의 개수를 추적해 발표하는데 2018년 기준으로 전년 대비 전시 공간이 1백47곳 늘었다고 한다. 물론 각종 국공립미술관과 박물관, 사설 미술관, 갤러리부터 전시를 치를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과 기존 공간의 재개관 수치까지 포함한 결과라 학술적으로는 다소 애매할 수 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우리에게는 2010년 이래 ‘신장 개업’한 전시장 수가 매해 꾸준히 1백 곳을 넘는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을. 게다가 여기에는 특정 부류의 장소가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 지금 전국 곳곳에서 스멀스멀 세력을 만들고 있는 젊고, 조그맣고, 힙한 느낌이 가득해 한 번쯤은 들러야 할 것 같은 ‘쪽방 전시장’의 존재 말이다. 우리는 이를 두고 딱히 내세울 말이 없어 기존과는 뭔가 다른 곳이라는 의미로 이런 단어를 붙여주곤 한다. ‘대안 공간’ 혹은 ‘신생 공간’. 그런데 이 두 곳은 대체 어떻게 다른 걸까.

미술사적 맥락에서 대안 공간은 주류에 반하는 곳이다. 거대한 기득권을 움켜잡은 기존 미술계에 반기를 들어 실험적이고 잠재력이 탁월한 젊은 작가를 키워내는 인큐베이터가 바로 대안 공간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안 공간은 1999년 탄생한 대안 공간 루프다. 같은 해 아트 스페이스 풀과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이 연이어 탄생하며 대안 공간 시대가 열렸다. 마침 올해로 이 세 곳이 20년을 버틴지라 대안 공간마다 서로의 생존을 축하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비영리를 철저하게 고수하며 비주류를 키우던 대안 공간은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주류가 됐다. 그러자 이런 대안 공간의 성격에 휘둘리지 않고 각자 다른 존재 이유와 운영 방식을 지닌 포스트 대안 공간이 등장한다. 이것이 신생 공간이다. 신생 공간은 2010년 이후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 이면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국내 미술 시장이 붕괴되면서 젊은 예술가들이 임대료가 저렴한 곳을 찾아 스스로 운영하는 자립적 공간을 만들면서 각자도생에 나선 게 큰 영향을 미쳤다.

신생 공간의 가장 큰 특징은 불완전성과 불안정성이다. 우아하고 널찍한 화이트 큐브는 존재하지 않는다. 거친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낡은 건물의 일부에 전시물을 걸어놓는 게 예사다. 좁고 불편한 공간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다. 무엇보다 생애 주기가 불규칙하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2015년 겨울, 한 미술 전문지에서 신생 공간에 대한 리포트를 낸 적이 있다. 그때 지도에 표기됐던 주요 신생 공간 중 현재 폐업, 휴업, 기능 상실, 용도 변경한 곳을 가볍게 읊어보면 다음과 같다. 개방회로, 갤러리 보는, 공간해방, 교역소, 구탁소, 기고자, 노토일렛, 막사, 미연씨, 반지하, 사이드워크, 사행성, 스튜디오 MRGG, 연결통로, 오페라코스트, 오픈더도어, 웨스트쉐어하우스, 일년만미슬관, 정신과 시간의 방, 청량엑스포, 커먼센터, 케이크갤러리, 플레이스플라스크, 200/20, 23층, 300/20, 727 NOW, 800/40(가나다순).

2019년 현재 신생 공간으로 존재감을 내세우는 곳은 계속 잘 버텨온 맷집형과 귀신처럼 사라질 신출귀몰형이 뒤섞여 있다. 이 리스트가 바로 우리가 요즘 말하는 ‘힙한’ 전시 공간인 셈이다. 초기 신생 공간인 갤러리팩토리, 아카이브 봄을 비롯해 2013년 이전에 생긴 공간사일삼, 플레이스막, 인스턴트루프, 그리고 2013년의 공간291, 시청각, 아마도예술공간, 2015년의 가변크기, 산수문화, 슬로우슬로우퀵퀵, 신도시, 탈영역우정국, 합정지구, 2016년의 소쇼, 스페이스 XX, 원룸, 취미가, 2017년의 공간 형, 위켄드, 2/W, 2018년의 공간;극, 더레퍼런스, 사유지, 오브, 중간지점 그리고 N/A까지. 리스트를 훑다 보면 전시 공간의 다양성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다.

친분 있는 큐레이터와 이 ‘힙’한 전시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이른바 ‘존버 정신’으로 꾸준히 수련하지 않고, 반짝 인기를 얻는 요즈음의 신생 공간을 ‘그다음 세대의 어떤 공간’ 즉 포스트 신생 공간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첫 번째 이유는 그 성격이 너무나도 ‘자폐적’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N포 세대의 예술가에게 신생 공간은 외부와 소통하는 곳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매몰되는 모래 지옥으로 기능한다. 포스트 신생 공간이 자신의 처지에 민감하게 귀 기울이는 태도는, 대안 공간의 제도권에 대항하는 패기와 차원이 다르다는 의미다.

또 어떤 이는 포스트 신생 공간의 특징으로 상행위를 꼽기도 한다. 재정난은 모든 비주류의 공통된 고민거리인데, 작품의 굿즈화, 축소 지향, 최소한의 생존을 답보하는 적극적인 영리 행위의 교집합에 포스트 신생 공간이 그 방점을 찍고 있는 형국이라는 의견이다. 한편으로는 무너져 내리는 미술판에서 살아남기 위한 작가들의 각자도생의 여러 가지 버전이라는 생각도 든다. 기존 신생 공간은 임대가 끝나면 사라지는 운명을 받아들이던 노마드적 공동체이자 공간이었다. 지금의 포스트 신생 공간은 그것에 대한 반대급부로 ‘일단 각자 사회에서 살아남기’를 목표로 하는, 조금 더 오래 ‘존버’하기 위한 플랫폼인 것은 아닐까?

앞서 언급한 큐레이터는 이러한 일련의 집단을 모은 전시가 바로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에서 열린 <TAKE ME HOME>이라고 귀띔했다. 독립적인 공간에서 전시 및 판매 플랫폼을 가동하는 아티스트를 주목했다는 설명을 보며 참여 멤버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소쇼, 아티스트 프루프, 팩, 팩토리2, 카스코… 모두 요즘 힙하다고 소문난 집단들이 아니던가. 포스트 신생 공간에 집중하다 오랜만에 반가운 이메일을 받았다. 시청각에서 새로운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10월 한 달 동안 열리는 전시는 프로젝트 그룹 ‘SMSM’의 가상 10주년 회고전. 그리고 이메일 말미엔 이번 전시를 끝으로 시청각 운영을 중단한다는 말이 차분히 적혀 있었다. 묵직하게 오랜 시간 버텨왔던 한 신생 공간의 운명이 아주 가볍게 흩어지는 광경과 더불어 포스트 신생 공간의 존재감이 유난히 지각 가능하게 번뜩인다고 느끼는 내 모습이 과민 반응인 건지, 당신에게 더불어 묻고 싶은 심정이다.

WORDS 전종현(디자인 저널리스트, PaTI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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